도그마 (Dogma)

0:00 0:00

‘교조’를 없애면 더 합리적이 될까: 콰인과 크릭이 드러낸 믿음의 역설

1951년 한 철학자는 경험주의자들이 믿고 있던 두 전제를 ‘교조’라고 불렀습니다. 몇 년 뒤에는 한 생물학자가 자신의 가설에 아예 ‘중심 교조’라는 이름을 붙였죠. 종교에서 가장 단단한 진리를 가리키던 단어가 철학의 공격 무기가 되고, 다시 과학의 원리가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1951년 1월, 미국 철학 학술지 The Philosophical Review에 짧지 않은 논문 한 편이 실렸습니다. 제목은 「경험주의의 두 가지 교조(Two Dogmas of Empiricism)」. 저자 윌러드 밴 오먼 콰인은 당시 분석철학이 의지하던 두 전제를 정면으로 공격했습니다.1

제목부터 묘했습니다.

경험주의는 권위보다 경험을 중시하고, 검증되지 않는 형이상학을 경계해 온 전통입니다. 그런데 콰인은 바로 경험주의 안에 ‘dogma’가 숨어 있다고 말했습니다. 종교적 권위를 비판해 온 철학자들이 정작 자기 전제만큼은 의심하지 않는다는 도발이었죠.

교조를 비판한다는 사람도 교조를 가질 수 있을까요.

질문을 따라가다 보면 뜻밖의 문제가 생깁니다. ‘dogma’를 무조건 ‘근거 없이 우기는 믿음’이라고 번역하는 순간 종교사도, 철학사도, 과학사도 제대로 보이지 않습니다. 가톨릭 교의와 독단적인 태도는 같은 개념이 아니며, 프랜시스 크릭이 말한 ‘중심 도그마’도 반증을 금지하는 과학 법칙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dogma라는 단어가 지나온 길은 인간이 지식을 만드는 방식에 가까운 질문을 던집니다. 사람은 무엇인가를 의심하려면 먼저 무엇인가를 믿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문제는 믿음 자체일까요. 아니면 믿음을 수정할 수 없게 만드는 방식일까요.

처음부터 ‘맹목적인 믿음’은 아니었습니다

dogma의 뿌리는 고대 그리스어 dogma입니다. 의견, 판단, 받아들여진 견해를 뜻했고, 더 거슬러 올라가면 ‘생각하다’, ‘~처럼 보이다’를 뜻하는 dokein과 연결됩니다.2 처음부터 ‘증거를 무시하는 완고한 믿음’이라는 뜻을 품은 단어는 아니었던 셈입니다.

현대 한국어에서는 사정이 복잡합니다. dogma를 문맥에 따라 ‘교의’, ‘교조’, ‘독단’으로 옮기지만 세 단어가 주는 인상은 상당히 다릅니다. ‘교의’는 종교 집단이 공식적으로 가르치는 신앙 내용을 떠올리게 합니다. ‘독단’은 근거를 듣지 않고 자기 판단만 밀어붙이는 태도에 가깝죠. ‘교조’에는 둘이 겹쳐 있습니다.

차이는 가톨릭에서 선명해집니다.

가톨릭교회 교리서는 dogma를 교도권이 신적 계시에 포함된 진리 또는 계시와 필연적으로 연결된 진리를 확정적으로 제시하는 경우와 연결해 설명합니다.3 가톨릭 내부에서 ‘교의’는 “아무 근거 없이 의심을 금지한 주장”이라는 뜻으로 사용되지 않습니다. 신앙 공동체가 무엇을 참으로 고백하는지 경계를 명확하게 표시하는 개념에 가깝습니다.

흥미로운 대목은 가톨릭 스스로 교도권을 계시 위에 놓지 않는다고 설명한다는 점입니다. 교리서는 교도권이 하느님의 말씀보다 우월한 존재가 아니라 전달받은 말씀을 보존하고 해석하는 역할을 맡는다고 규정합니다.4

더 흥미로운 대목도 있습니다. ‘확정된 교의’와 ‘이해의 변화’가 반드시 모순되는 것은 아니라는 설명입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Dei Verbum은 새로운 공적 계시를 기다리지 않는다고 선언하면서도, 사도들에게서 전해진 전통을 이해하는 깊이는 교회 역사 속에서 성장한다고 말합니다. 신자들의 연구와 묵상, 영적 경험, 주교들의 가르침을 통해 전달된 내용에 대한 이해가 깊어진다는 설명이죠.5

변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내용과, 내용을 이해하는 방식이 발전한다는 주장은 같은 말이 아닙니다.

물론 가톨릭 교의에는 실제 제도적 구속력이 있습니다. 현행 교회법은 세례받은 사람이 ‘신적이며 가톨릭적인 신앙으로 믿어야 하는 진리’를 완고하게 부정하거나 의심하는 행위를 이단으로 정의합니다. 이단·배교·분열에는 교회법상 파문 규정도 존재합니다.6 따라서 가톨릭 dogma를 단순한 개인 의견과 동일시할 수도 없습니다.

다만 여기서 ‘교의’와 ‘독단주의’를 분리할 필요가 생깁니다. 가톨릭 교의는 특정 공동체 안에서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 규정하는 내용 범주입니다. 독단주의는 반론과 증거를 어떻게 대하는가에 관한 태도입니다. 두 개념을 한 단어로 뭉개면 종교가 가진 내부 논리와 종교를 향한 외부 비판을 동시에 놓치게 됩니다.

다른 종교에 dogma라는 틀을 그대로 씌우는 일도 조심해야 합니다. 이슬람 전통에서 ʿaqīda는 신에 관한 믿음, 예언, 계시, 내세처럼 신앙의 토대를 다루는 ‘신조’ 또는 ‘신앙 체계’에 가깝습니다.7 테라와다 불교 연구에서 자주 논의되는 diṭṭhi는 ‘견해’ 또는 ‘관점’에 더 가깝고, 초기 불교 문헌에는 정견과 사견을 구분하면서도 견해에 집착하는 문제까지 함께 다루는 긴장이 존재합니다.8

‘모든 종교에는 교조가 있다’는 한 문장은 편리하지만, 편리한 만큼 많은 차이를 지웁니다.

회의주의자는 아무것도 믿지 않았을까

종교가 dogma를 공동체가 지켜야 할 진리와 연결했다면, 철학에서는 훨씬 일찍부터 dogma가 공격 대상이 됐습니다.

서기 2~3세기 무렵 활동한 것으로 추정되는 섹스투스 엠피리쿠스는 피론주의 회의론을 설명하면서 ‘dogma’를 비명백한 문제에 관한 명제에 동의하는 행위와 연결했습니다. 피론주의자는 논쟁 중인 세계의 본질에 관해 한쪽을 참이라고 확정하지 않고 판단을 유보하려 했습니다.9

여기서 흔한 오해가 생깁니다. 회의주의자를 “아무것도 믿지 않는 사람”으로 그리면 일상생활 자체가 불가능해 보이죠.

섹스투스가 남긴 설명은 조금 다릅니다. 뜨겁다고 느끼거나 목이 마른 경험까지 부정하겠다는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피론주의자가 경계한 대상은 눈앞에 나타나는 경험보다, 경험 너머에 있는 사물의 본질을 확정해 버리는 철학적 동의였습니다. 회의론은 무조건적인 부정이라기보다 판단을 확정해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는지를 계속 묻는 훈련에 가까웠습니다.

dogma를 둘러싼 오래된 긴장이 벌써 등장합니다.

판단을 전혀 내리지 않으면 지식 체계를 세우기 어렵습니다. 너무 빨리 판단을 확정하면 탐구가 멈춥니다.

인간은 두 위험 사이를 오갑니다.

1951년, 경험주의가 피고석에 앉았습니다

20세기 초 논리 경험주의자들은 오래된 문제를 새로운 언어로 풀어보려 했습니다. 철학을 과학과 연결하고, 논리와 수학의 역할을 설명하며, 경험과 아무런 접점도 없는 형이상학적 문장을 걸러낼 수 있는 기준을 찾으려 했죠. 흔히 ‘검증 원리’라는 이름으로 기억되는 시도도 한 가지 고정된 교리가 아니라 여러 철학자가 계속 수정한 일련의 프로그램이었습니다.10

콰인은 바로 경험주의 프로그램 내부로 들어갔습니다.

「경험주의의 두 가지 교조」에서 콰인이 첫 번째로 공격한 대상은 분석 명제와 종합 명제를 명확히 나눌 수 있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단어 뜻만 알면 참임을 알 수 있는 문장과, 세상이 실제로 어떤지를 확인해야 참인지 알 수 있는 문장을 원칙적으로 분리할 수 있다는 구분이죠.

두 번째 표적은 환원주의였습니다. 개별적인 유의미한 진술을 궁극적으로 즉각적인 경험과 연결된 표현으로 환원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11

콰인의 반격은 두 번째 문제에서 더 멀리 나갔습니다.

실험 하나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측정값이 예상과 다르게 나왔다고 해서 연구자가 곧바로 핵심 이론을 폐기하지는 않습니다. 측정 장비에 문제가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표본이 잘못됐을 수도 있고, 보조 가정이 틀렸을 수도 있고, 계산 과정에 오류가 있었을 수도 있죠.

관찰은 홀로 이론 하나와 맞붙지 않습니다.

콰인은 외부 세계에 관한 진술들이 하나씩 고립돼 경험의 심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서로 연결된 묶음으로 경험과 맞닥뜨린다고 주장했습니다. 훗날 ‘확증 전체론’이라고 불리게 된 생각입니다.12

경험이 믿음을 시험하지만, 경험 하나가 어떤 믿음을 버려야 하는지 자동으로 알려주지는 않습니다.

바로 여기서 ‘교조를 없애면 합리성이 남는다’는 단순한 그림이 흔들립니다.

과학자도 실험을 시작하기 전에 수많은 것을 잠정적으로 믿어야 합니다. 측정 장비가 정상이라는 가정, 수학적 계산 규칙, 이전 실험에서 얻은 지식, 표본 처리 방식, 다른 연구자의 보고까지 전부 매번 처음부터 검증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콰인이 모든 믿음은 똑같이 임의적이라고 주장한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경험과 연결되는 방식이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복잡하다는 데 있었습니다.

콰인의 공격도 철학 논쟁을 끝내지 못했습니다. 분석과 종합의 구분을 옹호하는 철학자들은 콰인의 비판이 구분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입증하지 못했다고 반박했고, 루돌프 카르납을 비롯한 논리 경험주의자들이 실제로 가졌던 입장은 콰인이 묘사한 단순한 환원주의보다 복잡했다는 연구도 이어졌습니다.13

‘두 가지 교조를 무너뜨린 영웅’이라는 서사로 콰인을 읽으면 콰인이 경계했던 일을 다시 반복하게 되는 셈이죠. 콰인의 비판 자체를 새로운 교조로 만들어 버리는 겁니다.

반증 가능성도 자동판매기는 아닙니다

칼 포퍼가 내놓은 답은 방향이 달랐습니다.

포퍼는 보편적인 과학 법칙을 유한한 관찰로 완전히 검증할 수 없다는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였습니다. 검은 까마귀를 천 마리 관찰해도 세상 모든 까마귀가 검다는 사실을 논리적으로 증명할 수는 없습니다. 반면 흰 까마귀 한 마리가 실제로 발견된다면 ‘모든 까마귀는 검다’는 명제와 충돌합니다.

포퍼는 과학을 비과학과 나누는 중요한 기준으로 반증 가능성을 제시했습니다. 과학적 이론이라면 적어도 어떤 가능한 관찰이 나타났을 때 이론과 충돌하는지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14

다만 교과서에서 자주 만나는 “반례 하나가 나오면 이론은 즉시 폐기된다”는 그림은 포퍼 자신이 설명한 과학 방법보다 훨씬 단순합니다.

실제 연구에서는 반례처럼 보이는 관찰이 측정 오류인지, 실험 조건 문제인지, 보조 가정 문제인지부터 판단해야 합니다. 포퍼도 논리적으로는 하나의 진정한 반례가 보편 명제를 반박할 수 있지만, 과학 방법론에서는 단 한 번의 충돌만으로 이론이 자동 폐기되지 않는다고 인정했습니다.15

과학을 독단에서 구해주는 것은 ‘반증 가능성’이라는 주문 하나가 아닙니다.

실험을 반복하고, 다른 연구자가 결과를 검토하고, 측정 방법을 공개하고, 경쟁 설명을 비교하고, 실패한 예측을 기록하며, 필요하면 오래된 이론까지 수정할 수 있게 만드는 절차가 함께 움직여야 합니다.

과학에서 중요한 차이는 확신의 유무보다 확신을 수정하는 통로가 열려 있는가에 더 가깝습니다.

과학자가 ‘도그마’라는 이름을 붙인 날

철학자들이 dogma라는 단어를 비판에 사용하던 무렵, 한 생물학자는 정반대처럼 보이는 선택을 했습니다.

프랜시스 크릭입니다.

1950년대 후반 분자생물학은 유전 정보가 어떻게 단백질 생산으로 이어지는지 설명할 언어를 만들어가고 있었습니다. 크릭은 1958년 「On Protein Synthesis」에서 훗날 분자생물학을 대표하게 될 ‘Central Dogma’라는 표현을 제시했습니다.

여기서 널리 퍼진 오해가 하나 있습니다.

중심 도그마를 흔히 ‘DNA → RNA → 단백질’이라고 외웁니다. 크릭이 뜻한 원래 명제는 조금 다릅니다. 1970년 Nature에 다시 설명한 중심 도그마는 염기나 아미노산 배열처럼 순차적인 정보가 단백질에서 다시 단백질이나 핵산으로 전달될 수 없다는 제한에 초점을 맞췄습니다.16

차이는 작아 보이지만 중요합니다.

RNA에서 DNA로 정보가 이동하는 역전사는 중심 도그마를 무너뜨리지 않습니다. 크릭이 1970년 논문을 쓸 무렵 하워드 테민과 데이비드 볼티모어 연구를 통해 역전사 과정이 중요한 관심사가 됐지만, 크릭은 핵산에서 핵산으로 이동하는 정보 전달을 원래부터 금지하지 않았습니다.17

더 재미있는 일은 단어에서 벌어졌습니다.

크릭은 훗날 회고록 What Mad Pursuit에서 ‘dogma’라는 표현을 선택한 일이 예상보다 훨씬 많은 혼란을 불렀다고 돌아봤습니다. 크릭은 가설보다 더 중심적이고 강한 가정이라는 느낌을 주려고 단어를 골랐지만, 종교와 신학에서 dogma가 가진 정확한 의미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다고 인정했습니다.18

묘한 장면입니다.

종교의 교의를 비판하는 데 익숙했던 과학자가 종교 용어를 빌려 과학적 명제를 이름 붙였습니다. 그런데 과학에서 ‘중심 도그마’가 살아남은 방식은 종교 교의가 권위를 얻는 방식과 달랐습니다. 연구자들이 크릭이라는 인물의 권위 때문에 명제를 지킨 것이 아니라, 수십 년 동안 축적된 실험과 분자 기작 연구 속에서 명제가 의미하는 범위를 계속 따져왔습니다.

바로 그래서 ‘과학에도 도그마가 있으니 종교와 과학은 똑같다’는 결론도 성립하지 않습니다.

같은 단어를 썼다고 지식 체계까지 같아지는 것은 아니니까요.

문제는 믿음보다 출구였습니다

심리학자 밀턴 로키치는 1960년 The Open and Closed Mind에서 특정 정치 이념 하나가 아니라 믿음 체계가 얼마나 열려 있거나 닫혀 있는지를 연구하려 했습니다. 로키치가 개발한 독단주의 척도 역시 믿음의 내용만이 아니라 반대 정보와 다른 신념 체계를 받아들이는 방식에 관심을 두었습니다.19

접근법에는 이후 많은 수정과 비판이 뒤따랐지만, 로키치가 구분하려 했던 문제는 여전히 유용합니다.

사람이 강하게 믿는다는 사실만으로 독단적이라고 부를 수는 없습니다.

오랜 실험을 견딘 과학 이론을 강하게 신뢰할 수도 있습니다. 종교인은 신앙의 교의를 확고하게 고백할 수 있습니다. 철학자는 어떤 논증이 다른 논증보다 훨씬 설득력 있다고 확신할 수 있죠.

독단주의가 모습을 드러내는 지점은 조금 뒤에 있습니다.

어떤 증거가 나와도 결론을 바꾸지 않겠다고 미리 정할 때, 반대 의견을 내용이 아니라 말한 사람의 정체성만으로 배제할 때, 자기 주장에 적용하는 검증 기준을 상대 주장에는 다르게 적용할 때, 실패를 설명하기 위해 임시방편을 계속 덧붙이면서도 무엇이 틀렸는지는 절대로 인정하지 않을 때입니다.

그렇다면 교조의 역사는 ‘믿음 대 이성’이라는 간단한 전쟁으로 정리되지 않습니다.

가톨릭 교의는 공동체 안에서 무엇을 신앙으로 고백하는지 경계를 세웁니다. 피론주의자는 경계를 너무 일찍 긋는 일을 의심했습니다. 논리 경험주의자는 경험으로 의미 있는 주장과 형이상학을 가르려 했고, 콰인은 경계를 긋는 사람들도 검토되지 않은 전제를 가질 수 있다고 공격했습니다. 포퍼는 이론이 반박될 위험에 자신을 노출해야 한다고 요구했습니다. 크릭은 ‘도그마’라는 단어를 과학에 가져왔다가 단어가 가진 무게 때문에 평생 따라다닐 오해까지 얻었습니다.

인간은 전제를 전혀 갖지 않고 사고할 수 없습니다. 더 중요한 질문은 전제에서 빠져나올 문을 만들어 두었느냐는 것입니다.

1951년 콰인이 경험주의자들에게 던진 ‘교조’라는 단어도 그래서 여전히 불편합니다.

누군가를 독단적이라고 부르는 순간 우리는 자신을 자연스럽게 반대편에 세웁니다. 나는 증거를 보고, 상대는 믿음에 매달린다고 생각하기 쉽죠. 하지만 콰인의 제목은 방향을 거꾸로 돌립니다.

가장 위험한 교조는 어쩌면 신념이 있다는 사실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자신에게는 검토할 전제가 하나도 없다고 믿는 순간일 수 있습니다.

주석

  1. W. V. Quine, “Two Dogmas of Empiricism,” The Philosophical Review 60, no. 1 (January 1951): 20–43, 특히 20. 서지 정보.
  2. Merriam-Webster, s.v. “dogma,” Merriam-Webster.com Dictionary, accessed August 16, 2026, https://www.merriam-webster.com/dictionary/dogma; Katja Vogt, “Ancient Skepticism,” in The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Winter 2018 ed., ed. Edward N. Zalta (Metaphysics Research Lab, Stanford University, 2018), sec. 1, https://plato.stanford.edu/archives/win2018/entries/skepticism-ancient/.
  3. Catholic Church, Catechism of the Catholic Church, para. 88, accessed August 16, 2026, Vatican.va.
  4. Catholic Church, Catechism, paras. 85–86.
  5. Second Vatican Council, Dei Verbum: Dogmatic Constitution on Divine Revelation, secs. 4, 8, November 18, 1965, Vatican.va.
  6. Catholic Church, Code of Canon Law, can. 751, accessed August 16, 2026, Vatican.va; Catholic Church, Code of Canon Law, can. 1364 §1, Vatican.va.
  7. Egypt’s Dar al-Ifta, “The Aqida (Creed) of Ahl al-Sunna wa’l-Jama’a,” accessed August 16, 2026, Dar al-Ifta.
  8. Paul Fuller, The Notion of Diṭṭhi in Theravāda Buddhism: The Point of View (London: RoutledgeCurzon, 2005), 1–2. 출판사 정보.
  9. Vogt, “Ancient Skepticism,” sec. 4.4, 특히 Sextus Empiricus, Outlines of Pyrrhonism 1.13–15에 관한 논의.
  10. Richard Creath, “Logical Empiricism,” in The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Summer 2026 ed., ed. Edward N. Zalta and Uri Nodelman (Metaphysics Research Lab, Stanford University, 2026), secs. 1, 4.1, https://plato.stanford.edu/archives/sum2026/entries/logical-empiricism/. 검증주의를 하나의 단순한 명제로 환원하거나 “자기 반박이므로 곧바로 실패했다”고 정리하는 설명은 논리 경험주의 내부의 다양한 수정과 카르납의 대응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
  11. Quine, “Two Dogmas,” 20, 35–41.
  12. Quine, “Two Dogmas,” 41–43; Georges Rey, “The Analytic/Synthetic Distinction,” in The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Summer 2026 ed., ed. Edward N. Zalta and Uri Nodelman (Metaphysics Research Lab, Stanford University, 2026), sec. 3.5, https://plato.stanford.edu/archives/sum2026/entries/analytic-synthetic/.
  13. Creath, “Logical Empiricism,” secs. 4.2–4.3; Rey, “Analytic/Synthetic Distinction,” secs. 3–4. 카르납의 후기 입장과 콰인의 비판 범위를 둘러싼 논쟁은 콰인이 논리 경험주의를 단번에 논파했다는 단순한 서술보다 복잡하다.
  14. Stephen Thornton, “Karl Popper,” The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last modified July 31, 2026, sec. 3, https://plato.stanford.edu/entries/popper/.
  15. Thornton, “Karl Popper,” sec. 4. 포퍼는 반증의 논리와 실제 과학 방법론을 구분했으며, 관찰 편향이나 측정 오류 때문에 겉보기 반례 하나가 자동으로 이론 폐기를 의미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16. Francis Crick, “Central Dogma of Molecular Biology,” Nature 227 (August 8, 1970): 561–563, https://doi.org/10.1038/227561a0.
  17. Crick, “Central Dogma,” 561–563. 크릭은 1970년 논문에서 테민과 볼티모어의 연구를 직접 거론하면서 중심 도그마가 단백질에서 핵산 또는 단백질로 이어지는 순차 정보 전달을 금지하는 명제임을 다시 설명했다.
  18. Francis Crick, What Mad Pursuit: A Personal View of Scientific Discovery (New York: Basic Books, 1988), 109. 크릭은 ‘dogma’라는 명칭을 택한 이유와 자크 모노에게 단어 사용이 부정확하다는 지적을 받은 일을 회고했다.
  19. Milton Rokeach, The Open and Closed Mind: Investigations into the Nature of Belief Systems and Personality Systems (New York: Basic Books, 1960). 로키치의 Dogmatism Scale은 믿음 체계가 열려 있거나 닫혀 있는 개인차를 측정하려는 시도에서 개발됐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