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피로 다 냈다고

이미 피로 다 냈다고

 

“사진값은 이미 6·25 때 지불하셨습니다.”

이 말 한 줄로 끝낼 수 있었다. 그런데도 난 더 쓰고 있다. 왜냐고? 그 한 문장이 너무 무거워서, 가슴 안에 넣고 삼키려다가 토했다. 그래서 여기다 다 쏟아놓는다.

당신이 이 영상을 보고도 울지 않았다면 그건 당신이 차가워서가 아니라 아직 충분히 뜨겁게 기억을 훈련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국 전쟁 참전국 22개국. 많이도 왔다. 다른 나라 전쟁에 애들 데리고 와서 총 들게 했다. 이유는 복잡했겠지. 공산주의니 뭐니, 전선 유지, 미국 눈치, 뭐 그런 거. 그건 외교고 이건 피였다.

20살짜리 애들이 처음 보는 나라, 첫 번째로 보는 시체들 속에서 죽거나 겨우 살아 돌아갔다.

그리고 그들은 돌아간 뒤, 잊혔다.

 

라미가 찾아간다. 카메라 하나 들고. 비행기 타고. 호텔 값도 자기가 내고. 사진 찍어주고. 프린트해서 액자에 담아서 손에 쥐여준다.

그런데 그 참전용사들이 말한다. “액자값은 얼마지?”

그래서 라미가 말한다. “이미 1950년에 다 내셨어요.”

이게 뭔가. 이게 뭐냐고. 사진값 얘기하는데 죽음을 얘기한다. 청춘을 얘기한다. 감사 대신 사죄를 돌려준다.

 

어떤 사진은 하루 간다. 어떤 사진은 백 년을 간다. 라미가 찍은 건 시간을 거꾸로 돌리는 사진이다.

어제 죽은 사람을 오늘 살아 있는 듯 보여주고 다시 죽게 만든다. 그게 기록이다. 예술이고 나발이고 다 집어치워도 기록은 남는다.

 

라미는 돈이 없다. 렌즈 팔고, 크레딧카드 긁고, 찍고, 편집하고, 보낸다. 피디도 없고, 지원금도 없고, 그냥 죄책감으로 찍는다.

예술가라면 원래 미쳐야 한다. 그런데 이 사람은 예술가 이전에 기억의 사제다.

우리한테는 하나의 전쟁이었다. 그들한테는 하나의 인생이었다.

 

나는 이 영상을 보고 처음으로 진짜로 고개를 숙이고 싶었다. 국가유공자 모자를 본 적 있다. 지하철에서, 시장에서, 공원에서. 하지만 그때마다 그냥 피했다. 감사의 방법을 몰랐기 때문이 아니라, 그걸 꺼내기엔 내 삶이 너무 민망했기 때문이다.

라미는 그걸 꺼낸다. 말로 하지 않는다. 사진으로 내민다. 그 안에 담긴 건 “당신은 잊히지 않았습니다.” 그 말 하나다.

 

“왜 남의 나라 전쟁에 와서 싸웠을까?” 그 눈빛이 궁금했다고 한다. 처음에 라미는 단지 궁금해서 찍기 시작했지만, 나중엔 그 눈빛이 질문이 아니라 사명이 되었다.

그 사람들 눈에는 전쟁의 시작과 끝이 들어 있었다.

살아남은 자의 죄책감, 죽은 자의 이름을 품은 눈, 그런 걸 어떻게 찍냐고?

그건 찍는 게 아니다. 받는 거다. 그 눈빛이 너를 통과해 셔터를 눌러버리는 거다. 라미는 그걸 그냥 가만히 받았다.

 

한 노병은 휠체어에 앉아 있었지만, “나는 군인답게 서서 찍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부인이 겨우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미소 지었다. 마지막 사진이었다. 며칠 뒤, 죽었다.

라미는 도착이 5일 늦었다. 사진을 손에 쥐여줄 수 없었다. 그리고 울었다. 진짜 엉엉 울었다. 카메라 든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내가 좀만 더 빨랐으면…”을 몇 번이고 되뇌었다.

이게 기록이다. 늦은 감정의 응급처치. 생전 마지막에 손 한번 잡아주지 못한 죄책감의 피드백.

 

사람들은 말한다. “사진은 남는다.” 그런데 라미는 다르게 말한다. “사진이 생명을 갖고 살아남기를 바란다.”

그래. 그 사람들 다 죽어가고 있다. 이젠 몇 년 안 남았다. 실제로 10년 안에 한국전쟁 참전용사는 거의 전멸할 거다.

그럼 우리는 뭘 남길 건가? 기념일에 현충원 가서 조기 게양한 사진? SNS에 #추모 해시태그 하나?

아니다. 그런 건 기억이 아니라, 위선이다.

 

라미는 말한다. “사진은 돈을 버는 수단이지만, 더 본질적인 건 다음 세대에 전하는 도구다.”

이 말을 듣고 나는 무릎을 쳤다. 그리고 손가락을 꺾었다.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내 방식대로 라미를 기록해야 한다고.

그는 셔터를 누른다. 나는 키보드를 두드린다. 그 차이뿐이다.

 

아직 그들을 본 적 있다면, 국가유공자 모자 쓴 노인 하나라도 본 적 있다면, 가서 고개를 숙여라.

그게 어렵다면 침묵이라도 해라. 침묵 속에서 입술을 깨물기라도 해라. 고개를 외면하지 말고.

이건 명령이다. 부탁이 아니라.

왜냐고?

이미 그들은 1950년에 목숨으로 값을 치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