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DIO $CHEMATA

지적 연결의 자본화

은유란 무엇인가?

조지 레이코프는 1941년생으로 미국의 인지 언어학자다. 개인의 삶에 관해 복잡한 현상을 설명할 때, 은유라는 개념을 활용한다. 그렇다면 은유란 무엇인가? 은유는 metaphor라고도 이야기하는데, metaphor의 어원인 meta는 ‘~의 뒤에’, ‘~의 너머’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쉽게 말해 ‘감추어진, 숨겨진, 은근한 비유’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예를 들어 직유는 “그대의 눈은 샛별같이 밝다.”는 것과 같은 표현이다. ‘샛별이 가지고 있는 밝은 속성’을 직접적으로 이야기해주는 것이 직유다. 이에 비해 은유는 “그대의 눈은 샛별이다.”라는 표현으로 이야기할 수 있다. 샛별이 가지고 있는 밝은 속성을 직접적으로 이야기해주고 있지는 않다. 샛별에 대해서 사람들이 상상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주고 있다.

 

다시 말해 직유는 직구, 은유는 변화구 정도로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은유는 우리 사회에서 왜 중요한가?

 

19대 대통령 선거 후보자 TV 토론회였다. “권력기관 및 정치개혁방안”이라는 주제로 토론을 하던 중이었다. 당시 대통령 후보였던, 안철수 후보가 한마디 한다.

 

“제가 MB 아바타입니까?”

 

안철수 후보는 “제가 MB 아바타입니까?”라는 은유적 표현을 사용했다. 이러한 은유적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TV를 시청하고 있던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안철수 후보 = MB아바타’라는 인식을 갖도록 만들었다. 안철수 후보의 의도는 “나는 MB아바타가 아니다.”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났다.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

여러분! 지금부터 절대로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세요.”

 

이 말을 듣는 순간 어떠한가? ‘코끼리’라는 대상이 순간 머릿속으로 그려지게 되지 않는가? 아마도 생각하지 않으려 애를 쓸수록 더 생각이 날 것이다. 이렇듯 은유적 표현은 무언가를 상상하는데 유리하게 작용한다.

 

우리 주변에서 이러한 은유적 표현은 곳곳에서 발견된다. 가령, ‘세금폭탄’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어떤 느낌인가? 폭탄이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은 또 어떠한가? 폭탄은 무언가를 터뜨려 많은 것들을 죽이고 상처 내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여기에 세금이라는 단어가 더해져서 ‘세금폭탄’이라는 단어를 접하게 되는 순간, 우리는 부정적인 이미지들을 상상하게 된다.

 

이처럼 은유적 표현을 통해 우리의 의식 속에서 일종의 ‘프레임’이 만들어진다. 2001년 911 테러 직후, 미국 공화당에서 “테러와의 전쟁을 위한 법”이라는 은유적 표현을 정치적으로 사용한 것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테러라는 부정적 단어와 전쟁이라는 부정적 단어를 조합하여, ‘이를 상쇄시키는 법’이라는 긍정적인 프레임을 만든 것이다.

 

절대적인 것은 없다. 이중개념

이러한 프레임에는 이중개념이 있다. 이중개념, 무슨 뜻일까? 여기에 진보와 보수 두 가지 사상이 있다.

 

평소에 이 아무개 씨는 자신의 정치 성향을 진보주의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치 성향이 진보주의라고 해서 다른 것들도 진보적인 성향을 띤다고 확신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자녀교육이나 낙태, 동성애 등의 문제에 대해서는 보수적인 시각을 가질 수 있는 거다. 그 이유는 개개인이 살아오면서 형성되는 판형, 프레임이 다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엄격한 아버지 밑에서 자랐지만, 아버지와의 관계가 좋아서 엄격한 아버지상을 이상향으로 추구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반면에 엄격한 아버지 밑에서 자랐지만, 아버지와의 관계가 좋지 않아 그와 반대되는 아버지의 상을 이상향으로 추구하는 사람도 있다.

 

이처럼 이중개념은 한 개인의 경험과 해석에 따라 동시에 여러 가지 자세, 프레임을 취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정치 성향은 진보적이지만, 자녀교육에서는 보수적인 이 아무개 씨와 같은 사람이 우리 주변에 있을 수 있는 것이다.

 

프레임은 유동적이다

절대적인 것은 없다. 각자의 프레임을 통해 사실이 표현되고, 각자의 프레임에 따라 사실이 재해석된다. 모든 것은 상대적이다. 절대적인 진리라고 생각되는 것들도 결국은 상대적 진리인 셈이다.

 

프레임의 형태는 고정되어 있지 않다. 유동적이다. 프레임 자체도 변할 수 있다. 개개인이 어떠한 경험을 했는지에 따라 프레임의 모습도 그때그때 함께 바뀐다.

 

타이밍도 하나의 변수다. 프레임을 언제 갖다 대는지에 대한 시간도 중요하다. 과거의 프레임과 현재의 프레임은 다를 수 있다. 예전에 읽었던 책이나 영화가 시간이 흘러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과 비슷하다.

 

대상에 따라서도 프레임의 모습은 달라질 수 있다. 같은 사실이라도 친밀한 사람에게 이야기할 때와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 이야기할 때 서로 다른 프레임이 적용될 수 있다.

 

다양성을 존중하자

모든 것은 상대적이고 유동적이다. 지금 변하지 않는 것도 프레임에 따라 변할 수 있는 것이다. 반면에 변하는 것도 프레임에 따라 변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이 글에도 프레임이 있다.

 

글을 보는 사람, 시간, 매체 등을 통해 여러 프레임이 중첩된 것이다. 의도와 사실이 언제든 왜곡될 여지가 있다. 따라서 우리는 프레임에 대해 항상 의식적으로 살펴봐야 한다. 사람들이 의도적, 혹은 비의도적으로 만들어 놓은 프레임을 발견하고 이해해야 한다. 프레임의 이러한 속성을 이해하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우리의 생각과 다른 다양한 의견과 사고를 받아들이고 존중할 수 있다.

 

지금까지 은유와 이중개념, 프레임 등에 관해서 이야기했다.  주변에 조금만 눈을 돌려도 무수히 많은 프레임을 발견할 수 있다. 오늘부터 우리를 둘러싼 프레임들을 인지하고, 이해하며 깨뜨려보자. 그리고 깨어있는 삶을 통해 프레임에 휘둘리지 않는 주도적이고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자.

 

우리의 뇌는 소중하니까.